진(Zine)이라고 불리는 ‘DIY’ 출판물은 개인 또는 소규모 공동체가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정보를 교환하고, 조직하는 방법으로 활용되어 왔다. 가끔 그 목적은 개인의 기록에 있고, 타인과의 네트워킹에 있으며, 가볍고 빠르게 어떤 결과물을 산출하기 위한 의도적인 장치로도 활용된다. 이처럼 개인과 집단에게 열린 가능성을 제공하는 진은 가공의 스포츠, 퀴디치의 공처럼 눈에 잘 띄지 않고 무질서하게 부유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 그 궤적을 가늠하기가 어렵다.
가상의 진 도서관을 배경으로 하는 ‘바벨의 진 도서관’은 총 28팀(29인)이 기증한 진들을 통해 새로운 독자와 진을, 그리고 진과 진 사이를, 또는 진의 이러한 특징을 애호하는 이들을 연결하는 것에 의의를 둔다. 도서관은 남은 1회에 걸쳐 찾아올 예정이다.
*답변은 23년 10~12월 사이에 취합되었습니다. 답변자의 답변은 원문 그대로 표기했습니다.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이름은 박진우이고, 비즐라 매거진에서 디자인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진 제작자 / 수집가인가?
제작자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아끼는 진, 또는 주변과 주고받은 진이 어떤 것인지 소개해달라.
서울도심 Vol.1 “서울의 정말 오래된 빌딩들”이라는 진. 이 진은 서울 시내의 오래된 빌딩 몇 개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특징들을 소개한다.
소개한 진이 제작된 배경을 알고 있나?
아마도 수년 전 언리미티드 에디션에서 산 것으로 기억한다.
소개한 진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나?
진이라 하면 반항적이고, 개인적인 표현 방식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 행사장에 그런 것들이 즐비한 가운데 온전히 정보 위주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진이어서 매력을 느꼈었나 싶다. 서울 시내의 오래된 빌딩들이 매력 있기도, 궁금하기도 했고. 이런 소소한 정보나 아카이빙이 진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주변과 진을 나눠 본 경험이 있나?
없다. 곧 있을 예정이다.
당신이 아는 진 제작자 또는 진 애호가를 한 명 이상 소개해달라.
장재혁. 비즐라 매거진의 에디터인데, 진과 같이 작고, 개성 있는 문화에 호기심이 많다. 에디터로서 일을 하고 있지만 가슴속에 창작욕이 숨 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진과 진이 아닌 것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개인적인 것, 중철.
여태 진의 매력이라고 알려져 온 것들은 배제하고 다시 새롭게 생각해 볼 때, 당신이 생각하는 진의 매력은 무엇인가?
책을 만들기는 힘들다. 왠지 책이라 하면 최소 100페이지는 훌쩍 넘겨야 될 것 같고, 글을 끄적이는 게 아니라 집필(?) 해야 할 것 같고, 출판사 어쩌고도 뭔가 있어야 할 것 같지. 일반인 레벨로 에너지를 쏟기 힘들다. 하지만 진은 가능하다.
진 문화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써달라.
각박한 세상은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것을 추구하게끔 한다. 합리와 효율을 추구하다 보면 다른 생각과 호기심은 낭비라 여겨지게 된다. 정답에 가까운 게 항상 존재하는 합리와 효율로 인해 다들 비슷해진다. 나는 획일화되지 않은 다양한 사람의 조화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보통 다른 부류인 것 같은 사람과 친해지려면 자잘하고 개인적 것에 대한 대화가 많이 필요하지 않나. 그런 면에서 진은 그런 자잘한 대화 같다. 서로의 개인적인 뭔가를 슬쩍슬쩍 보여주고 서로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다양함에 대해서 서로 인지하는 그런 거…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백강현, froggy office의 주인입니다. 그리고 기획이나 편집 디자인을 하고… 불러주면 공연장에서 놀음을 합니다…
진 제작자 / 수집가인가?
제작자입니다.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아끼는 진, 또는 주변과 주고받은 진이 어떤 것인지 소개해달라.
아끼는 진은 없습니다(요즘엔 아까는 물건이란 게 잘 없습니다). 그런데 읽어보고 괜찮아서 소개해도 괜찮을 것 같은 진은 있습니다. 지난번 박다함을 통해 신도시에 공연을 왔던 테리(teri)의 무라카미 쿄주상이 만든 미얀마 레코드 문화와 발전에 대한 진.
소개한 진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나?
무라카미 교주는 미얀마 음악을 연구하는 일본 작곡가 겸 밴드 teri의 기타리스트입니다. 매년 미얀마를 직접 방문하셔서 오래된 미얀마 판을 디깅 하시고 복원하시는 듯합니다. 이 zine에서는 지역 음악의 양상이나 레코드 문화를 넘어 미얀마에서의 음반 제조 및 녹음 문화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소개합니다. 지역 음악에 관심이 많은데, 예전에 어디서 인가 음악의 발전에 있어서 에티오피아나 미얀마 등의 나라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래서 뭔가 지역의 음악의 정보를 자세하게 알 수 있어서 기쁜 편이고, 그리고 이 zine 은 컴필레이션 cd와 함께 구성되어서 들어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본인이 제작한 진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구세대로부터의 마스코트(Mascot)들, 오래된 간판이나 표지판, 안내판 정도에 그려진 삽화들 (마스코트 캐릭터)를 담은 손바닥 크기의 허접한 DIY zine. 한 3년 동안 생각나는 대로 찍은 사진들이 어느 정도 엮어볼 만큼 쌓이게 돼서 발매했습니다.
주변과 진을 나눠 본 경험이 있나?
네
당신이 아는 진 제작자 또는 진 애호가를 한 명 이상 소개해달라.
♥서울컬트, 임재호♥
진과 진이 아닌 것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진과 진이 아닌 것의 구분은 아무래도 ISBN의 유무가 아닐까요?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정리되고 구색이 갖추어있으면 보통 책으로 읽히는 것 같고 가벼운 마음으로 취향이나 취미, 흥미 있는 사건을 엮는다면 진이 될 것 같습니다. 진은 뭔가 하고 싶은 이야기나 보여주고 싶은 것을 빠른 시간 안에 출판사를 끼지 않고 스스로 해냄에 있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박다함,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진 제작자 / 수집가인가?
제작을 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적극적인 제작자는 아니고, 수집자에 가깝지만 그렇게 적극적인 수집가는 아닙니다. 애호가에 가깝습니다.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아끼는 진, 또는 주변과 주고받은 진이 어떤 것인지 소개해달라.
일본의 진스터 그룹 TEAM KATHY가 만든 KATHY ZINE, 집구석 레코드가 만든 구석구속(링크는 아주 약간의 정보를 포함합니다)을 아끼고 좋아합니다. TEAM KATHY가 만든 KATHY ZINE은 책, Chapter 4: Zines in the 2000s: Print’s not dead / Between Zines and Blogs에도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본인이 제작한 진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기억이 맞다면) 첫 번째로 만들었던 진은 2002년에 만들었던 펑크락/아나키즘 팬 진 “WE ARE STILL ANGRY”, 두 번째로 만들었던 진은 2007년에 더 북 소사이어티의 임경용과 만들었던 진 “우리는 위트로 먹고살아요”.
소개한 진이 제작된 배경을 알고 있나?
시즈오카현 미시마시에 있는 얼터너티브 스페이스 CRY IN PUBLIC의 진 제3호. “이번 호에서는 「따뜻한 생활」을 테마로, CRY IN PUBLIC에 모이는 사람들이, 나날의 생활 속에서 따뜻하게 깨달은 것나 쉐어하고 싶은 것, 생활의 변화로부터 태어난 경험 등에 대해 자유롭게 집필”이라는 자료를 유일하게 인터넷으로 도쿄의 인포샵 IRREGULAR RHYTHM ASYLUM의 홈페이지를 통해 찾았습니다.
소개한 진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나?
이 진을 만든 DIRTY 씨는 제가 처음 오프라인으로 만난 진스터였습니다. 첫 일본여행에서 인터넷 검색을 통해 방문한 인포샵 IRREGULAR RHYTHM ASYLUM에서 구입한 KATHY ZINE의 구성원이었습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을 방문했고,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후 많은 시간이 지나 시즈오카로 거주지를 옮기고 자신의 공간 CRY IN PUBLIC을 만들고 지역에서 꾸준히 진과 관련된 활동을 하는 것을 보면서 활동의 꾸준함에 대해서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되었습니다. 소개한 진은 마츠모토의 MARKING RECORDS에서 구입한 걸로 기억이 납니다. 제가 딱히 진스터라는 의식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지는 않지만, 진을 나눠 본 경험을 떠올려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도쿄 진스터 개더링이라는 행사, 대만의 낫 빅 이슈, 웨이팅 룸이라는 대만의 독립출판페어를 통해서 서로 사고 교환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펑크음악에서는 트레이드라는 개념이 있어 자신이 만든 테이프/시디/엘피를 서로 교환하는 의미가 있어 진스터들에게도 비슷한 의미로 서로가 가지고 있는 진을 교환하는 게 어색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최근에는 대만에서 온 친구 Miaoju Jian이 자신이 만든 진 MJ Breakbeat를 전달해 줬습니다.
당신이 아는 진 제작자 또는 진 애호가를 한 명 이상 소개해달라.
전통적인 의미의 진 제작자는 딱히 없는 거 같고(존재했다가 사라지지 않았나 싶고), 애호가도 찾기 어렵지만, 주위에서 찾자면 임경용 씨, 장지원 씨, 유진정 씨 정도가 생각납니다. 모두 자신들이 진을 만들었던 사람들이기도 하고, 애호가라고 생각합니다. 제작자로 갑자기 생각난 사람은 번갯불 문고를 만들고 있는 오늘의 풍경의 신인아 씨입니다.
진과 진이 아닌 것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글쎄요, 언제나 태도에서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에게 이것이 무엇입니까 하면 종이, 매거진, 소책자, 도록 등의 이름으로 말할 수 있는데요. 명칭에서도 그렇고 진이라는 문화를 경험하고 이해하는 사람이 그런 태도를 가지고 진이라고 말한다면 그게 한 장의 종이가 되었든 굉장히 큰 형태의 종이 묶음이 되었든 진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여태 진의 매력이라고 알려져 온 것들은 배제하고 다시 새롭게 생각해 볼 때, 당신이 생각하는 진의 매력은 무엇인가?
아무래도 진의 매력은 사소하지만, 그것들을 공유할 때 나타나는 순간이 아닐까 싶네요. 수고스러움을 다 감당하고 만드는 거니깐, 그런 부분도 좋고. 지금 이 순간처럼 일부러 찾아 나서지 않으면 찾을 수 없고 인터넷에 자료도 남아있지 않지만 누군가에게 종이 또는 파일로 남아있다면 언젠가는 만날 수 있기도 한 부분이 매력적이지 않을까요?
진 문화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써달라.
제가 더 열심히 관찰을 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의 진 문화는 또 어딘가에서 계속 움직이고 있지 않을까요.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황은영이라고 합니다. 까만 개라는 작은 출판사를 만들어 책과 진을 펴내고 있습니다.
진 제작자 / 수집가인가?
제작가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아끼는 진, 또는 주변과 주고받은 진이 어떤 것인지 소개해달라.
‘BLUES UNLIMITED’라는, 영국에서 매월 발행하던 매거진의 1965년 판을 갖고 있습니다. 블루스 음반이나 음악가 인터뷰, 당시 소식 등 블루스 음악에 관한 여러 내용을 담은 것인데요, 매거진으로 소개가 되어 있지만, 신문 용지에 흑백 인쇄, 스테이플러로 제본한 조악한 품질 등 여러 면에서 진이라고 할 만한 요소가 있다고 생각하고 좋아해서 소개합니다. 제가 소장한 ‘BLUES UNLIMITED’ 1965년 5월호에는 스킵 제임스 인터뷰가 실려 있네요.
본인이 제작한 진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제가 만든 진으로 ‘벨벳 언더그라운드 팬 진’, 서구 근대 건축물 사진을 찍고 낙서를 해서 만든 ‘근대건축의 원리’ 등이 있고, 박진홍이 만든 미국 배우 ‘스티브 부세미 팬 진’과 최근에 델타 블루스 노랫말과 그림을 엮어 만든 진 ‘BLUES LIMITED’ 등이 있습니다.
소개한 진이 제작된 배경을 알고 있나?
1963년 영국에서 사이먼 내피어와 마이크 리드비터가 시작했으며 블루스 음악에 관한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소개한 진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나?
갖고 있는 진 중에 내용 면에서 훨씬 더 사소하고 완결성이 없는 진들도 있긴 하지만, 소개한 진은 그중에서도 형태면에서 와닿았던 것 같습니다. 주류 매체가 담지 못하는 여러 문화를 담는 것이 진이지만, 개인적으로는 형태에 관심이 많고 그것이 태도와 연결된다고 생각합니다. ‘BLUES UNLIMITED’(초창기 이슈에 한함)는 정말 어디 하나 정성껏 만들었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없는데요. 델타 블루스가 그렇듯, 다운 튜닝한 기타 들고 아무 데나 앉아 부르는 노래 같습니다.
주변과 진을 나눠 본 경험이 있나?
북페어에 나가면서 몇 명이 모여 각자 진을 만들어본 적이 있고, 또 페어에 나갔을 때 주변에서 진을 구매해 주거나 교환하는 식으로 나누는 것 같습니다.
당신이 아는 진 제작자 또는 진 애호가를 한 명 이상 소개해달라.
소풍진. 제가 처음 만든 그림책을 인상적으로 소개해 주어서 알게 되었는데요, ‘두 번 짖은 까만 개’라는 책이었습니다. 그 책은 그림책이지만 여러 면에서 진을 만드는 태도로 만들었고, 중철 제본을 해서 욕을 먹기도 했던 책인데, 소풍진은 그걸 알아봐 주었던 친구들이고, 알고 보니 이미 진 제작자이자 애호가여서 신기했습니다. 소풍진 인스타그램에 가보면 그들이 모으고 소개하는 진, 특히 90년대 한국 인디씬에서 나왔던 진도 볼 수 있고, 취향이 멋있는 친구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진과 진이 아닌 것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태도.
여태 진의 매력이라고 알려져 온 것들은 배제하고 다시 새롭게 생각해 볼 때, 당신이 생각하는 진의 매력은 무엇인가?
돈의 논리가 빠져있는 매체(다른 식으로 이용당할 때를 제외한다면).
진 문화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써달라.
아무거나 하자.
Editor | Jieun 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