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CCIMAZE

일본 내 젊은 그래픽 디자이너로서는 희귀한 사례라고 자리를 주선해준 현지 관계자가 귀띔해주었다. 사람을 소개할 때 그다지 쓰이지 않는, 그야말로 희귀한 단어 선택에 크게 의문을 가지지 않았던 이유. 그것은 89년생그래픽 디자이너 구찌메이즈(Guccimaze)의 행보가 독보적이기 때문이다. 짧은 이력에도 불구하고 타이포그라피를 주 무기로 니키 미나즈(Nicki Minaj), 플라잉 로터스(Flying Lotus) 등 각종 유명인사와 협업하며 그 화려한 행보를 쌓아가는 그는 확실히 일본의 젊은 그래픽 디자인 신(Scene)을 이루는 한 축이다. 하나의 사례로, 구찌메이즈는 “소셜 미디어의 발달이 가져온…”으로 시작하는 클리셰의 우수한 표본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구찌메이즈를 설명할 수는 없다. 소셜 미디어질의 필수품인 허세와 개소리를 내심 기대했던 나는 그와 대면 후 이를 확신했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답하는 구찌메이즈는 말보다 작품이 자신을 설명하길 바랐다.


본인의 철학이 궁금하다.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

사실 지금 어디를 향해 가는지 잘 모르겠다. 디자이너와 아티스트, 그 두 토끼를 잡으려 노력 중이다.

그래픽 디자이너가 되기로 마음먹은 계기가 있다면.

꼬마 때부터 그림을 잘 그리기로 유명했다. 곁에는 언제나 길거리 문화가 있었다. 그래피티, 스케이트보드, 스트리트 패션, 힙합 음악 같은 것에 빠져 살았지. 그렇게 그래픽 디자인을 업으로 삼게 되었다.

구찌메이즈라는 이름의 유래가 궁금하다. 힙합 음악의 영향이라든가.

카와구치. 내 성씨다. 처음 디제이 활동을 시작할 때 주변 친구들이 카와구치의 구치를 된소리로 바꿔 구찌(Gucci)라 부른 것이 그 유래라면 유래겠지. 그 후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예명과 로고를 누가 요청하길래 로고를 그리려다보니 구찌의 영어 철자에 곡선이 많아 영 마음에 안 들더라. 뭐가 됐든 곡선이 많으면 로고가 날카롭게 뽑히기 어렵다. 따라서 덧붙인 단어가 메이즈(Maze)다. 발음, 뜻 모두 마음에 드는 몇 안 되는 단어이기도 하고. 또 래퍼 구찌 메인(Gucci Mane)의 이름에서 N을 90도 회전하면 구찌메이즈가 되지 않나. 힙합 음악을 향한 내 애정도 드러나니 만족스럽다.

디제이 활동도 꾸준하다. 2018년 가을에는 본인 사운드 클라우드 계정에 한 시간 남짓한 믹스를 내놓기도 했다. 디제잉은 어떤 계기로 시작했나? 본인의 디자인 작업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지도 궁금하다.

19살 무렵 처음 디제이로 무대에 섰다. 스트리트 패션의 큰형들과 영향력 있는 디제이들이 일렉트로 하우스(Electro House) 음악을 틀기 시작한 때와 비슷한 시기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힙합이 전부였던 우리 길거리에서 저스티스(Justice) 같은 이의 음악이 급부상한 것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에 자극받아 듣는 음악의 폭도 넓어졌고 자연스레 난 디제이가 되었지. 내 작업에 음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동반자다. 클럽에 어울리지 않는 음악이라도 상관없다. 음악에 집중하는 순간에 난 최고의 작업물을 내놓고 음악이 없으면 그래픽 디자인을 시작하지도 않았을 거다.

음악 외 평소 어디서 영감을 얻는가.

도시, 그리고 친구들.

패션에도 관심이 큰 것으로 안다. 구찌메이즈의 10대 시절, 패션 아이콘은 누구였나.

니고(Nigo),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 칸예 웨스트(Kanye West) 등.

초기부터 지금까지 구찌메이즈의 작품 스타일은 어떻게 변화했나.

어떻게 변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주어진 상황에서 항상 의외의 것을 만들어왔다.

본인의 웹사이트에 기재된 소개에 따르면, 작년까지 회사원이었다고.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전향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냥 지겨워서. 원하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 뛰쳐나와 홀로 서보니 회사원으로 있을 때보다 더 큰 책임감을 등에 업게 되었다. 그게 전부다.

해외 아티스트와 여러 작업을 진행했다. 처음 의뢰받은 작업은 무엇이며 어떻게 진행되었나.

프랑스 파리 기반의 의류 브랜드 유스 오브 파리(Youth of Paris)의 티셔츠의 디자인이 아마 첫 시작이다. 인스타그램 DM으로 의뢰를 받아 진행된 일인데 빠르게 품절됐다고 들었다.

페티 왑(Fetty Wap)과 포스트말론(Post Malon)이 입은 티셔츠 그래픽을 제작했다. 그에 멈추지않고 작년 8월에는 니키 미나즈의 앨범 [Queen]에 자신의 타이포그라피를 올리기도 했는데, 이러한 거물급 인물과 협업이 이뤄진 배경이 궁금하다.

배경이라 할 만한 건 잘 모르겠고 나의 작업 스타일을 다양한 신에서 재미있게 봐주니 이뤄진 일이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내가 먼저 협업을 요청한 적은 없다. 하나의 작업이 다른 작업으로 유기적으로 이어졌다.

차가울 것만 같은 메탈 로고지만 니키 미나즈 앨범에 올린 아트워크에서는 어렴풋이 따뜻함도 느껴진다. 그뿐만 아니라 본인의 다른 메탈 로고도 그 표현 방법에 따라 담기는 감정이 다양한 듯하다.

작업하는 나의 마음에는 대개의 경우 노여움, 슬픔, 즐거움이 혼재한다. 그때의 내 감정 상태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오니 그렇게 느낀 것이 아닐까.

당신의 그래픽 디자인은 전통적인 타이포그라피 디자인에서 탈피하려는 것 보인다.

일반적인 스타일에는 관심 없다. 새롭고 정신 나간, 하지만 아름다운 형체를 만드는 것만이 유일한 작업 동기다.

해외 클라이언트와의 작업은 아무래도 일본 내 클라이언트 작업과 다르지 않나. 어떠한 차이가 있을까.

일본 클라이언트 중 다수는 그래픽 디자인이 얼마나 효과적이고 강력한 무기인지 이해 못 한다. 때로는 우릴 내려다보기도 하고. 병신 같지. 반면에 해외 클라이언트는 대개 리스펙트를 가지고 우리를 대하더라. 아티스트를 향한 존중이 그 둘의 가장 큰 차이다.

올해 봄, 세계적인 규모의 아티스트 플랫폼 보일러 룸(Boiler Room)에서 구찌메이즈 협업 티셔츠를 공식 머천다이즈로 발매했다. 이들과 작업하게 된 배경은.

보일러 룸의 누군가가 내게 이메일을 보냈다.

보일러 룸 협업 티셔츠 중 ‘Mind Control’ 아트워크가 눈에 띈다. 밑에 일본어로 적힌 하드 테크노에 관한 설명도 인상 깊은데, 힙합 음악을 선호하는 본인에게는 신선한 시도가 아니었을까.

그 말처럼 신선한 재료를 찾다가 도착한 곳이 90년대 레이브(Rave) 문화의 디자인이었다. ‘Mind Control’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아트워크고. 새로운 시도라고 할 것은 아니다. 이전과 같은 작업방식과 철학으로 작업했다.

일본 내 작업 중 가장 의미 깊은 걸 꼽는다면.

솔직히 의미의 깊이를 따질 만큼 일본에서 경험을 쌓진 않았다.

위에 언급된 굵직한 작업으로 한국에도 구찌메이즈라는 이름이 알려졌다. 일본 내에서 본인은 어떤 그래픽 디자이너로 인식됐다고 생각하는지.

확실히 나의 스타일은 일본 대중의 이해 범주에서 많이 벗어났다. 유명해지긴 힘들겠지. 그렇지만 패션, 음악 신에서 나름대로 자기 것을 하는 사람. 그렇게 알려지지 않았을까?

서울 기반의 레이브 문화 패션 브랜드 인터내셔널(The Internatiiional)과 협업을 이룬 계기 또한 궁금하다.

인터내셔널에서 인스타그램 DM으로 나에게 아트워크 디자인을 의뢰했다. 사실 그들이 말 걸기 전부터 포스터도 몇 장 구매했을 정도로 멀리서 응원하고 있었다. 그 덕분일까. 상당히 기분 좋았던 협업으로 기억한다.

PURE LOVE logotype
draft design for CROSSFAITH
shirt design for Boiler Room
hankerchief design for 百けん
graphic design for “the INTL”
page design for TUNICA

평소 존경하는 디자이너나 요즘 흥미로운 인물이 있다면.

데이비드 루드닉(David Rudnick), 조나단 카스트로(Jonathan Castro) 그리고 ‘Sk8thing’.

작업에서 앞서 언급한 조나단 카스트로와의 유사성이 느껴진다.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궁금하다.

카스트로의 미래적인 스타일과 그의 배경 디자인(Background Design)을 정말 좋아한다. 물론 그의 작업에서 많은 영감을 얻고 리스펙트하지만 나에게는 나만의 영역이 있다.

오리지널을 유지한다는 것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모르겠다.

도쿄라는 도시를 설명한다면.

천국.

이전 일본 매체 FNMNL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개인전을 계획 중이라고. 구찌메이즈의 많은 그래픽이 입체적인 만큼, 독특한 전시를 기대할 수 있을까.

아직 나조차 어떻게 전시가 꾸며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모두가 직접 방문해 인터넷 밖으로 나온 내 작품을 봐주었으면 한다.

당신이 매체 투니카 스튜디오(Tunica Studio)와의 대담에서 버질 아블로(Virgil Abloh)에게 던진 질문을 되돌려주겠다. 만약 당신에게 365일의 휴가가 주어진다면?

세계여행을 떠나겠다.

Guccimaze 공식 웹사이트
Guccimaze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진행 / 글 │ 홍석민

*해당 인터뷰는 지난 VISLA Paper 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VISLA Paper는 지정 배포처에서 무료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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